모든 사람이 제각기 자신의 태도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딱 한 가지, 이놈의 자주성이 근간이 되어서 내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바로 '두려움' 이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입니다. 이 두려움이란 것이 사람을 평생 머슴으로 살게도 만들고, 누구는 평생을 주인으로 살게도 만들지요.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이나 매사에 못나게 사는 사람들이 전쟁이나서 세상이 뒤집힌다고 하여,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한들, 한번 가난에 길든 사람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도 그리고 세상이 뒤집혀서 다시 새롭게 시작해도 똑같이 못 삽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이미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 버릇처럼 죽을 때까지 그리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예전 내가 내 아들놈이 대학 다니면서 읽은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참 기가 막히더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나 느낀 단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 '노예교과서' 라고 제목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 싶더군요. 책을 보니, 세상을 살면서 남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내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삶이고 이런 이야기를 하던데, 이는 자신의 주인에 어떻게 충성을 해야 하고, 주변의 노예들과 어떻게 해야 주인을 잘 모실지, 아니면 노예들끼리 어떻게 단합하고 질서를 유지할지를 이야기 하는 것 이외에 내가 이해를 못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같은 내용이니,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내 직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어 일주일에 하루를 쉬게 만들더라도 읽게 해주고 싶더군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이 나를 위해서 열심히 충심을 다하게 할 수 있고, 나나 내 회사에 충심을 다 바치게 해주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다가 금상첨화인 것이 모두가 다 좋은 이야기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면서 조직 내에서 반목하지 말자는 이야기인데, 이보다 더 좋은 노예 교과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두려움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이런 이야기를 했냐 하고 물어보시면, 이 인간관계론 이란 아주 나쁜 책이 바로 세상의 사람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니 한 이야기라 그리 말한 것입니다. 남들과 싸우거나 반목하거나 제멋대로 하거나, 아니면 튀는 행동, 독특한 생각을 가지거나, 어느 때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 창의적인 발상이나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을 사회와 조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하고, 그리되면 직장에서 내쫓긴다, 직장에서 내쫓기면 급여를 못 받으니 처자식 먹여 살릴 일이 막막하여 인생이 비참해진다고 두려움을 심어주니, 거참 기가 막힐 노릇 아니겠지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주인을 섬기는 노예의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 나쁜 책이 어디 있나요.
내 나이 지금 이제야 1갑자 하고 6년을 더 살았지만, 아직 종교가 없소이다 종교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을 줄 수
있다 하여라도 그리는 믿지만, 내 믿지 않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라오. 종교라는 것 그것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지역을 막론하고, 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이유는 사람의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 아니겠소? 그중에서 죽음에 대해 두려움, 그런
두려움들이 인간에게 종교라는 것을 필요케 하였고, 그 종교를 통해서 영생을 얻겠다는데 내 무슨 거기에다가
토를 달리오? 종교라는 것이 무슨 예전에 대부분의 사람이 믿고 있는 특정한 지금의 신들이 아니라,
냉수 물 한 그릇 떠 놓고 달님에게 빌던 것이 종교이거늘 요즘은 옛날과는 아주 다른데도 그 종교에 자신을 다 맡기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더이다. 옛날에야 전쟁이나 전염병, 홍수,
기근 등이 많아서·공포를 대하는 것이 지금과 다르게 실제 내 앞에 놓여있고 맞닥뜨린 공포인데, 지금 세상에 무슨 전염병 일어나서 죽을 일도 없고, 휴대전화로 전화 한 통 걸면 경찰도 오고
차 타고 다니면서 다칠 일도 없고 밥 굶을 일이나 추워서 동사할 일도 없는데,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걱정인지
매사에 여기도 걱정 저기도 걱정 매번 죽는소리만 하는 것이 지금의 세상 아니겠소? 내 얼마 전 아는 지인에게
교회에 끌려가 옆에서 앉아 있는데, 기도하는 것이 잘살고 있고, 자식들
모두 의대 나와서 교수하는 양반이 자식의 생계와 건강 노후 등 미래에 대한 보이지도 않는 막연한 걱정에 대하여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더 이곳에서는 안되겠다 그리 생각이 듭디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면, 사는 것도 두려운 법입니다. 어제 먹은 보신탕의 개는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길래 개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서 탕까지 됬나요? 돼지는 어떻고, 소는 어떻한가요?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졌길래 그러냔 말입니까?내 말인즉슨, 전생도 없고 후생도 없고 지금 내 글을 보고 있는 현생 만이 존재할 뿐이지 그 이외에는 살면서 아주 부차적인 것인데 왜 그리들 현생에서 사는 것도 제대로 못살면서 후생까지 신경 쓰는지 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그리고 이 지구가 이 나라가 얼마나 넓은데, 당신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눈 하나 깜짝 할 거라 생각해요? 천만의 말씀이요. 여러분 다 죽어도 이 나라 이 세상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그들이 교육되고 어찌 보면 사육되고 있다는 것을
참 많이 모르시고 계시더군요. 유럽의 경제위기가 왔다고 나랑 그것이 무슨 관계요? 내 통장에는 잔액을 유럽의 군인들이 와서 빼가는 것도 아니고,
내 목숨을 담보로 무엇을 내놓으라 하는 것도 아니고 내일 자식이 입대를 해서 전쟁에 나가는 일도 아닌데,
무작정 신문에서 '위기다. 불안이다’ 하니,
관계도 없는 일에 동조하여 자신의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 지금 내 이야기를 보고 있는 모든 분 아닌가요?
신문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서 꼭 틀에 맞추어, 어느 신문이나 똑같이 다른 나라의 위기나 다른 사람의 위기가 나에게 큰 위기를 심어줄 것처럼 공포감을 주지만, 무엇이 일어났나요? 그래서 가족이 죽었나요? 아니면 누가 큰 병에라도 걸렸나요? 저축은행 사태 때 피해 본 것이 유럽사태보다 내 주변에 우리나라에 더 큰 피해이지만, 누구 하나 그것 신경 쓰는 사람 보았나요? 그 돈 없으면 길거리로 내려앉을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유럽사태가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저축은행 사태가 더 중요합니까?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두려움만을 가지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선동하는 데는 그저 공포감 하나로도 족하구나 하고 생각이 듭디다.